■오늘은 라면의 환갑 날입니다■ ■오늘은 라면의 환갑 날입니다■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태어났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날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봅니다. 고민 끝에 라면을 제조하는기술을 들여옵니다. 라면을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따기 였습니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 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 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 였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JP) 씨를 찾아갑니다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줍니다.
우정은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집니다. 일본의 반응은 냉담 했답니다.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묘조(明星) 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청합니다. 전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말합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 정상화도 안 됐지만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준 셈이다. 우리는 한국전쟁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시설을 두 라인에 2만 5.000 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 주었다고합니다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주지 않더랍니다.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줍니다.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비율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 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 저렴한 가격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런 애국자들의 덕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세계10위권 경제대국에 진입 하고 배고픔을 벗어났는데 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정치를 바로 잡아야만 합니다. 받은 카톡글 편집입니다!
2024.9.22.아띠할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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