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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 칼럼] 한국인의 넓은 가슴, 펼쳐 보아라!


[석우 칼럼] 한국인의 넓은 가슴, 펼쳐 보아라!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한가위 추석 명절이 바로 지났다.

중국의 북녘에는 우리와 같은 민속을 즐기는 민족들이 많다.


홍산(紅山)문화 유적이 발굴되는 요하(遼河)지역이야말로

우리 조상이 만주족, 여진족과 함께 말달리던 터전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기마민족들과 경쟁하고 교류하던 

역사의 흔적이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새 왕조를 세우고 강역(疆域)을

압록강 이남으로 좁힌 다음, 중화 사대주의(事大主義)와

조공 체제에 절어버렸다.


일본 제국주의는 이를 구실삼아 열등 민족이라고

강조하여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 했다.

굴종의 역사가 비정상이었음은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의 80년사가 증명한다.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를 얕볼 수 있을까?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30배나 컸던 선진국 일본을

이젠 우리가 따라잡고 있다.

중국은 덩치는 크지만, 규범을 지키지 못하는

후진국 의식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국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교육입국

덕분에 한국은 세계 최고의 지식사회가 되었다.


한국의 장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곧 닥칠 인구절벽을 경고한다.

대응책을 슬기롭게 마련해야 한다.

건국 후 이승만, 박정희의 리더십을 따라서

온 국민이 피땀 흘린 결과 경제 기적을 만들었다.


5·16 이후에는 

미국에서 훈련받은 군 엘리트들이 공개경쟁,

과학행정 등 선진 관리시스템을 도입하였다.


62년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주역이었던

경제 테크노트라트들은 세계적으로 경탄의 대상이었다.


언제나 최선의 방안을 시도하고,

벽에 부딪히면 다시 바른길을 찾아서 목표를 달성해내는

집요함이 빛났다.



미국 백악관 행정동 아이젠하워빌딩에서 17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열린 추석 축하 행사에서 부채춤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언제인가부터 성공에 자만한 탓에,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선방(先防)하지 못했다.


동남아에서 위험신호가 불어오는데도 강 건너 불 보듯

하다가 외환위기에 빠졌다.


한국경제의 근본(fundamental)이 튼튼하다고 장담하다가

단기외채의 집중적인 상환 요구를 해결하지 못해서

IMF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었다.


195억 달러 차입금을 예정보다 3년이나 앞당겨

2001년 8월 전액 상환하여 IMF 관리체제를 벗어난 것은

경제관료의 방심이 위기의 큰 원인이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인구변화에 대한 미숙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인구통계의 흐름을 제대로

읽었으면 장기적 인구감소를 걱정했어야 할 때,

역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계속 밀고 가는 우(愚)를 범하였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할 때, 브레이크를 계속 밟은 격이다.

경제관료의 실책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출입국관리의 무감각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본래 어느 나라든 출입국관리들은 도도하기 짝이 없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매우 심하다.

일본의 제도와 관행을 거의 그대로 베끼던

한국의 출입국 행정이야말로 문제가 많아 보인다.

지금의 인구추세는 여성취업 증가와 육아지원의

취약성 때문에 저출산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난해 연간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OECD국 최저를 기록하였으니,

전망은 너무 뻔하다. 일본, 중국과 같이 인구절벽이 눈에 훤하다.


메가트렌드가 그런 데도 불구하고 일본이 취하던

배타적인 출입국관리 정책을 버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한국의 경제력, 국력은 최정점에 달했고,

주요 산업이 확장해 나가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이 3D업종을 꺼리기에

많은 중소기업이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주변 개도국보다 10배 정도나 되고,

일본보다도 높아졌다.


몽골이나 네팔,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같은

주변 개도국의 청년들은 한국 취업 비자를 받으면

마치 로또 당첨한 것처럼 기뻐한다.


그래서 한국대사관 주변에는 비자 브로커들 농간으로

5백만 원, 천만 원의 뒷돈이 거래되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인구의 5퍼센트에 가까운 250만 명이나 된다.


그들은 한국경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구성원이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특히 중소기업이나 서비스업은 타격을 받는다.


한국이 개방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고 국제교류가

활발하면 할수록 이 추세는 되돌리기 어렵다.

세계 경제력 10위권, 국력 6위권의

나라가 인적교류를 제한하기는 불가능하다.

한국은 대외 교역으로 사는 나라다.


조선시대의 쇄국정책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고려의 융성했던 시기 색목인(色目人)이 예성강 하구에

몰려들던 때보다도 훨씬 국제화된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몰리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한국은 이제 인구감소와 노동력 부족에

대비하여 문호를 적극 개방해야 할 때다.

일본도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려는 폐쇄적 정책이

경제활력을 앗아갔음을 깨달았을 때는 상황은 너무 늦었다.

필자는 한 조선족 동포와 친하게 지낸다.

그의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만주로 건너가 정착해서 3세에 해당한다.


중국 공안에서 복무하다가

인권경시와 민족차별, 부패관행에 환멸을 느껴,

사직하고 14년 전 자유와 인권의 선진국인 조국에 들어왔다.


난민인정 신청을 법무부가

불허하자 행정소송을 통해 난민인정을 받았다.

생업을 위해서 특별귀화 신청을 하였으나,

불허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한국에 입국해서 열심히 살았고, 지역사회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해온 경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귀화 허가를 받을만한 데, 너무 무심하게 거부당했다.


이제 이주노동자 정책 자체를 과감하게 전환할 때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 보호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발전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다.

용광로처럼 지구촌 인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한국은 5천 년 넘는 역사에서 최정점에 달했다.

강성한 나라를 만들 자신감이 넘쳐야 외부의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한 지 200년 만에

전 세계의 주도국이 된 건 전 세계의 인재들을 자유의 땅에

끌어들여 창조적 생산을 해냈기 때문이다.


천년 로마제국도 전 세계의

인재들을 끌어들여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했던

징기스칸의 몽골도 정복 지역의 인재들을 두루 등용하여

세계 경영에 성공했다.

한국은 개방사회여야 하고,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해 친화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한국경제를 지속해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인재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국이 동아시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데 이바지할 역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에 남거나,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도

친한 인사들의 중심이 될 것이다.


6.25 전쟁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용사들이

전 세계 친한 세력의 주축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포용적인 한국 사회가

그들에게는 꿈을 이루는 터전이 되어야 한다.

코리안 드림이 활짝 피도록 가슴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김 석 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전 통일원 차관)



받은글(등대님) 편집입니다!

2024.9.21.아띠할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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