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지들이여, 드디어 때가 왔다!-
마지막, 어머니도 베었다. 계백은 그리고 말을 탔다. 황산벌 5천 결사다. 좌파는 그리하였다.
그 결연함으로 왕위마저도 찬탈하였다. 그리고 그 결연함을 무기로 다시 또 한 번, 윤석열을 겨냥한 칼끝이 9월 29일 가을 하늘 태양빛 아래 섬뜩하게 빛난다.
박근혜 탄핵주도 좌파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술에 취한 그를 태워 천관녀의 집을 찾아 내려놓았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우파는 그리하였다.
천박하게 안일한 우파는 드디어는 그 허접함으로 옥쇄를 스스로 바치고 말았다.
참여연대까지 가세한 신강남좌파 패거리의 '설마' 하는 무사안일과 나약함으로 인하여 윤석열의 왕좌마저 침탈 직전에 이르게 한 것이다. 행동대장으로 하여 탄핵의 정국을 막후에서 주도해 박근혜를 주저앉힌 백병원 지주 가문 하버드 박사 백낙청은 윤석열 정국에서도 유감없이 그 능력을 발휘한다.
헌재의 구성요건상, 그리고 무지렁이 백성들까지의 경험칙상 탄핵은 불가하다고 판단, 성동격서의 전술로만 쓰고 주 화력은 아버지 친구라는 작자로부터 디올백을 선물 받은 김건희에게 집중시켜 '작계 0929'로 윤석열을 촛불로 태워 죽이자는 것이다. 전쟁의 화약고 같은 한반도에서 우리의 최대 이슈가 김건희여서야 말이 되겠느냐며 야당을 힐책하면서도 종국적으로는 남편 윤석열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며 그 대안으로 한동훈에게 빨대를 꽂고 그를 윤석열의 대항마로 부추기는 세 치 혀끝을 놀려 국정농단을 자행한다.
그야말로 자유대한민국이 김일성 이래 유훈으로 통치된 적진 앞에서 고꾸라지는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보관하고 있는 '김일성 비밀교시'라는 게 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에서 김일성은 이렇게 말했다. 그 한 번은 6·25 이고 또 한 번은 4·19입니다. 6·25 때는 박헌영의 허위 보고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4·19 당시에는 연락부가 제구실을 못 해서 놓쳐버렸습니다. 그때 내가 함경도 지방에서 현지 지도 중에 4·19가 터졌다는 보고를 받고 평양으로 달려올 정도로 연락부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다시 한번 4·19와 같은 좋은 기회가 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동무들은 이런 각오로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6개월에 걸친 철두철미한 준비기간을 걸쳐 남한 내 '김일성 저작집'에 광분하는 종북주사파들과 힘을 합쳐 5·18을 연출한다.
비록 수령의 교시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버젓이 교과서에 광주의 5·18을 주도하였노라고 영웅담을 싣고 떼죽음 당한 475명을 위한 '무등산 진달래'라는 진혼가를 불러 영혼을 달래주었다. 그들은 시체를 찾아 고이 묻어주겠노라고 약속까지 했다. 국회를 시작으로 박찬대 원내대표까지 민주노총 등 장외 단체와 손잡고 윤석열을 끌어 내리자고 숭례문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내란선동죄를 알면서도 내란을 선동한 것이다.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윤석열도 인왕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부르라는 것이다. 관창이 화랑의 눈부신 기개로 계백을 돌진한다. 태극의 대열 속에 너희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며 목숨이 가다가다 농을 쳐 휘어드는 황산벌로 황산벌로, 또 황산벌로! 노태악을 비롯한 촛불행동 김민웅의 심장을 창끝에 꼳아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치켜들고 다시는 이땅에 종북좌파가 설치지 못하게 서슬 퍼런 기개를 보여야 한다.
어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라고 법률에 새긴 계엄의 선포를 어길 것인가. 그건 직무의 유기이고 간극의 위기에 빠진 나라의 위태로움을 수수방관하는 직권의 포기로 사형감이다. 헌법에 명시된 민초들의 저항권이다. 아스팔트 위에서 용병의 처절한 대가를 간단없이 치른 태극의 혼이 드디어는 새로운 정기를 대한의 땅에 뿌리기로 하고 시뻘건 황토물을 격하게 토해내는 양산박에서 입에 칼을 물고 좌파보다 더 잔인하리라 맹세하느니! 받은글(등대님)편집입니다!
2024.10.2.아띠할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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