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좋은 약
햇살 방울들이 송이송이 떠다니는 거리를 따라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약사 아저씨, 빨리 죽는 약 있어요?"
아이의 말에 당황한 약사는
"그 약을 누가 먹으려고 그러니?"
"할머니 드리려고요"
아직은 죽음이 뭔지 모를 아이가 하는 말에
속 사정이 있으리라 본 약사는
"할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
"네. 저를 재워 놓고는 할아버지
사진을 보며 늘 그렇게 말씀하였어요"
라고 말한 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손바닥만 한 돼지 저금통을 내미는 게 아니겠어요
"내일이 할머니 생신인데 그 약을 선물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천진한 표정 속에
묻어 있는 아픔을 애연하게 바라보던 약사는
"네가 말하는 약이 여기 있구나
이 약을 할머니께 선물해 드리렴"
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내민
저금통보다 약사가 내민 약이 비싸 보였는지
"약사 아저씨, 진짜 이 돼지 저금통이랑
바꿔주시는 거예요?"
"그럼 이 돼지 저금통에 들어있는 돈이면 충분 하단다."
동전 몇 개만 딸랑거리는 돼지 저금통을
흔들어 보이며 웃고 있는 약사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하늘을 날듯 할머니가 계신 집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날들이 가고
그로부터 3일이 더 지난 비 내리는 오후
덜컹거리는 손수레를 끌고 약 국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요.
"저 약사 선생님"
말끝을 흐리던 할머니가 미리 준비해온 듯
접어 놓은 만 원 짜리 한 장을 키운 터에 올려놓더니
"이 약을 며칠 먹고 나니 기운이 나서 이렇게
폐지를 주우러 나온 김에 들렸구먼요"
손자 놈 재워 놓고 혼자 넋두리하는 걸 듣고
여기 와서 약을 사 올지는 몰랐다며 비싼 약을
가져온 미안함에 쩔쩔매는 몸짓을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다시 약봉지와 만 원을 지어준 약사는
"할머니 약 값은 손자한테 받았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린 게 무슨 돈이 있어 약 값을 줬을까요.
모자라는 건 제가 폐지를 주워 틈틈이 갚아 드릴 테니
우선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할머니 그 약 다 드시고 나면 손자를 다시 보내주세요.
아셨죠?"
갠 하늘에 펼쳐져 있는 오색 빛깔 무지개를 타고
할머니가 멀어진 자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약사는
혼자 되 뇌고 있습니다
효심 만큼 더 좋은 약은 없다며··· .
펴냄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받은 자료글(송완순님)입니다!
2024.9.27.아띠할멈.().